* 이번주는 설교 녹음이 안되어서 설교문으로 대체합니다.


제목: 마가복음강해 8 일어나 따르니라

본문: 2:13-17

 

1. 도입: 조르주 이야기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살이 되던 해에, 모든 유산을 다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갑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험준한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게 붙잡혀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정치적인 힘이 있으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치인의 한계를 깨닫고는 직접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빈민구호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단체를 만들어서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이야기 하나가 등장합니다.


피에르 신부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그의 지역구에서 어떤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조르주라는 남자였는데, 그의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기구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서로간의 불화와 불신으로 인해서 이혼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기숙학교에 보내져서 가족과 떨어져서 지냈습니다. 조르주는 스무살에 약혼을 했고 그 약혼녀를 끔찍하게 사랑했지만, 새어머니때문에 어쩔수 없이 파혼을 합니다. 그리고 새 어머니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하고 딸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약혼녀와 파혼을 하게 된 것이 새엄마가 자신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서 격분한 조르주는 새엄마를 찾아가 권총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 총알에 아버지가 맞아 죽게 되었고, 자신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조르주는 15년간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한 덕분에 특별 사면이 되어서 다시 사회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서 집에 가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몇 달전에 먼저 출소한 감방 동료가 자기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고 아내는 동료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감옥에 있는 동안 훌쩍 커버린 열다섯 살짜리 딸은 결핵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를 혐오하고 또 외면하였습니다. 조르주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도대체 인생을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자살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연을 들은 피에르 신부는 그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다 써버렸고, 더군다나 그들에게 집을 지어 주느라 빚까지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에르 신부는 조르주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해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자살 시도까지 하면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짓는 해 봅시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집을 좀 더 빨리 지을 수 있습니다.” 조르주는 신부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 짓는 일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이 경험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을 통해서,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조르주는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게 됩니다. 나중에 그가 신부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그냥 베풀어 주셨더라면 아마도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조르주에게 필요했던 것은 값싼 동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주고 위로해주는 힐링의 말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돈 몇푼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조르주는 피에르 신부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면서, 자신의 비참한 상황속에서 그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 세리, 레위

여러분은 지금 삶을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있습니까? 삶의 목적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레위였습니다. 레위는 당시의 교통의 요충지였던 가버나움의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였습니다. 보통 세관의 세리들은, 자신이 징수한 세금에 대해서 수수료를 취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과다하게 징수해서 많은 이윤을 만들곤 했습니다. 세리들은 백성들의 돈을 도둑질할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을 위해서 일한다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들에게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로인해서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모임인 회당에서 쫓겨났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수치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세리는 자신의 동족이나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비난 받으며, 경멸을 당했던 것입니다.


레위가 언제부터 세리로 일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은 분명했습니다. 15절에 보면, 그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의 동료 세리들도 초청하고, 지인들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식사자리에 함께했습니다. 레위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모으고 대접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이처럼, 비록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고, 자신의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았지만, 그 대가로 레위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리 레위는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라는 직업으로 인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리로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고, 로마의 황제를 섬기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로마를 위해서 일하는 매국노였고, 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할수록 괴로웠고 수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세리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주어지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라고하는 보상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의미와 목적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무의미하게 감당하고 있던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영혼은 피폐해지고, 메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레위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레위를 보자마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레위의 반응이었습니다. 레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반응했습니다. 세관 자리를 박차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레위는 이미 예수에 대한 소문을 사람들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도전을 받았고, 이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다가오시더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3. 레위의 부르심

물론, 자신의 삶의 터전을 다 버리고,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어부일을 하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가진 것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네 명의 제자와 레위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레위는 다른 제자들보다도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레위가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살았던 거대한 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했습니다. 좀전에도 말했듯이 그는 세리로서 큰 부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세리였던 레위가 같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의 비난과 조롱, 멸시와 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유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풍족한 삶을 통해서, 공동체로부터 소외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레위는 로마제국과 헤롯 안디바라는 당대의 최고 정치 권력자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권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이 가지고 있는 힘, 권력때문에 유대인들이 세리를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놓고 세리를 미워하고, 조롱했다가는, 세리들로부터 또 다른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가 그동안 누리고 있어왔던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부와, 권력을 동시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부와 권력을 맛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것을 애초에 포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돈 맛을 본 사람은 가난했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맛본 사람은 권력의 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레위라는 사람도 그러했습니다. 레위는 분명 유대인입니다. 그는 여느 유대인들처럼 어렸을 적부터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을 것입니다.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외우면서 살았습니다. 돈보다는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서 살게 되자,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달콤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레위기 변질되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는 세리로 일하면서 자신이 초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벌면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다만 그가 세리일을 택했던 것은, 지지리도 가난했던 지금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비록 지금 동족 유대인들에게 비난과 원망과 조롱을 받고 있지만, 내게 주어진 물질을 이웃을 위해서 잘 사용한다면, 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맛보고 경험하고 나니, 점점 더 큰 기쁨과 만족,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탐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는커녕, 여느 세리들처럼 악랄하게 같은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느덧 그의 마음에 맘몬, , 물질이 주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동족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돈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괴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그에게 다가온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끝없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지 않고 즉시 응답했습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삶을 향해서 과거의 삶과 단호히 결별하고 믿음으로 모험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4. 소유양식 vs. 존재양식

독일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명저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의 양식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소유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양식입니다. 소유양식이란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소유양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물질, 아름다움, 지식, 사회적 지위,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처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까요? 좀 더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로 옮겼지만, 그렇게 회사를 옮기자 행복이 찾아옵니까? 처음 한 두달은, 나의 PAY CHECK 에 찍힌 금액을 보면서 행복해 할 수 있지만, 이내 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연봉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끝없는 소유욕구로인해서 나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한 채, 오직 자기의 채우지 못한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소유에 집착하는 삶은 현재 내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한채,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래서,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소유양식과 반대되는 것이 존재양식입니다. 존재양식은 에리히 프롬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존재양식이란 삶 자체를 즐기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여 세계와 하나가 되게 하며, 모든 관계를 살아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생활양식이다.” 이러한 존재양식의 가장 기본은 타인과의 공유입니다. 타인을 인정하고, 경청하고, 사랑하고, 공유함으로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타인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남을 섬기고, 그것을 통해서 행복을 경험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레위는 그동안 소유양식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더 많은 것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삶을 살아갔습니다. 레위에게 다가오셨던 예수님은 이러한 그의 잘못된 삶을 치유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을 이 세상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게로 돌렸습니다. 그에게 세상 나라에서 세상의 방식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가 소유에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에게 주신 삶 그 자체, 그의 존재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도록 도전하셨고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레위는 예수님과 함께 3년간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동행했던 3년간의 삶을 통해서, 레위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는 레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마태 레위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5:3절에 나왔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끔찍한 지옥을 경험할 뿐입니다. 하지만 소유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내 존재에 집중할 때,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 질 수 있고, 그 가난한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소유가 아닌 우리의 존재에 집중하게 될 때, 하나님 나라가 다가온다는 것을 레위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직접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5, 삶의 치유자, 예수

오늘 예수님은 레위를 부르시면서, 자신을 의사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통용되던 격언입니다. 예수님은 의사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들고 상처입은 자들을 고치고 치유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레위처럼 직업이나 삶 때문에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도 고쳐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순히 몸이 아픈 사람들만 고쳐서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잘못된 가치관 세계관을 고쳐서 건강하게 만드셨습니다.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 그리고 그의 삶 전체가 건강해 짐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이 세상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시는 것이 예수님 사역의 궁극적인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병자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셨고, 그의 질병이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모든 것들을 고치고 치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고집과 강퍅한 마음, 교만으로 인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삶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문제를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렇게 병든 몸과 영혼을 안고 살면서, 자신의 삶을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 병들어 있는 곳은 없습니까? 문제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우리 모두는 죄인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치유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생각했고, 치유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 진실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6.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 버린채, 허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존재의 의미를 잃어 버린채,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을 소유하기 위한 잘못된 욕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깨닫고 과감하게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레위의 모습에 용기와 도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내 인생은 늦었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그때 바로 우리는 예수님께로 달려가야 합니다. 내 인생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우리들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향해서 기쁨으로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레위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를 만나 주셨듯, 우리들이 지금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치유해 주시옵소서. 세상의 헛된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우리의 남은 삶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