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농구장에 있는 낙엽을 쓸어 담았습니다. 농구장 옆에 큰 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서 가을이 되면 청소거리가 많이 생깁니다. 가을 내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구장에는 낙엽들이 두툼한 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아이들이 농구를 하다보면 낙엽을 치우겠지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쌓여있는 낙엽을 치우며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얼마나 많은 낙엽이 떨어지는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수백만 개의 낙엽들을 가지고 있는 나무의 찬란함은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와 나무 그 자체가 보입니다. 나무는 낙엽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땀 흘린 엄마와 같습니다. 예전에 북극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는 엄마 북극곰이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오랜 시간동안 사냥에 실패하여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은 시간만 되면 엄마 젖을 빨아댑니다. 그래도 엄마 곰은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젖을 내어주며 안쓰럽게 쳐다봅니다. 떨어진 낙엽에서 엄마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고, 이번 주는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영양소가 빠진 낙엽의 색깔이 추수의 색깔과 비슷한 이유는 누군가의 희생을 통한 결실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찾아오는 추수감사절은 의미가 큽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계절의 신비함과 결실의 축복을 깨달으며 고개를 숙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초막절(수장절)을 추수감사절과 연관 짓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구원하심을 생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칠일 동안 초막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초막절의 은혜를 우리의 삶과 연관시키며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17세기 초에 신대륙에 도착한 필그림 조상들(Pilgrim Fathers)이 그 해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사실을 기념하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처음 신대륙에 도착한 필그림들을 순전한 청교도들이 아니라 급진파로 이해하여 추수감사절의 기원으로 생각하기를 꺼려하기도 합니다. 미국정부에서는 링컨 대통령에 의해 11월 넷째 주를 추수감사절로 지키자고 선포했으며, 1941년에 비로소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국가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정착되기까지 희생의 시간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개혁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행정명령으로 약 500만 명에 이르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공화당에서는 결사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예산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그들을 낙엽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불법체류 이민자들은 쓸어 담아 버려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나무를 나무답게 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며 떨어진 낙엽을 통해 생명과 감사 그리고 미국을 생각합니다.

 

2014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