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대하다 보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역사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역사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활동하고 계신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현대 그리고 미래의 종말까지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과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요즘 큐티 본문이 구약의 역사서 마지막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 역사서의 마지막은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입니다. 이 시대는 지금부터 2,500년 전후 시대의 역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때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성경이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제국입니다. 바벨로니아 제국 또한 성경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바벨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남유다 왕국이 멸망당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 왕국은 다윗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경의 핵심적인 나라입니다. 남유다 왕국은 바벨로니아에 의해 B.C. 605년부터 3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결국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왕하 24) 멸망당하게 됩니다.

 

바벨로니아 제국은 앗시리아 제국을 정복합니다. 앗시리아(앗수르) 제국도 성경의 역사와 관련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그 나라가 앗시리아에 의해 B.C. 722년에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앗시리아 제국, 바벨로니아 제국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세계역사 가운데 앗시리아, 바벨로니아,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고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귀환과 관련된 성경입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남유다인들이 포로생활 70(29:10)이 되어 귀환을 시작합니다. 3차에 걸쳐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1차는 스룹바벨(B.C. 538, 2), 2차는 에스라(B.C. 458, 7) 그리고 3차는 느헤미야(B.C. 444, 2)가 인도자가 되어 고향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2, 3 세대가 지나서 고향 땅을 찾은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갔을 때는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을 것이며, 그곳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노예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도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서를 보면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셨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며, 역사를 주관해 가신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됩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포로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무너져 있는 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노예생활을 할 때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었고,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에 오기만 하면, 그렇게 가고 싶었던 성전에 갈 수 있다는 기대와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고향에 돌아와 보니 황폐해져있는 성전을 보며 그들은 대성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것 때문에 대성통곡을 해야 합니까? 성전과 예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대성통곡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편안한 삶의 조건들 때문에 무너져가고 있는 영적인 예배, 성전을 경험합니다. 지금은 자신 안에 있는 무너져가는 예배와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대성통곡할 때입니다.


2014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