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오늘부터 추석연휴입니다. 멀리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우리도 추석을 보냅니다. 천상병 시인은 한가위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가을이 되었으니 한가위 날이 멀지 않았소.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요절한 조카 영준이! 지금 천국에서 기도하시겠지요.”추석이 되면 고향이 생각나고, 사람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번 한가위가 더욱 소중히 다가옵니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성장해서 가족들 곁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가족들이 있는 한국을 생각해 봐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니 몸은 쇠약하고 남아있는 식구도 없으며 이루어 놓은 것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교회와 교회식구들 그리고 하나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절실히 붙잡고 살아야 하는 숭고한 이방인의 삶입니다.

 

9월의 큐티본문이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를 묵상하면 이민자의 삶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가 깊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성경 에스더서의 배경은 페르시아(바사)의 전성기에 해당합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오늘날의 이란지역에 정착하여 고대 오리엔트 문화를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바벨로니아를 점령하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역사는 성경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입니다(B.C. 586). 그 당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유대인 후대들이 곳곳에 퍼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라는 인물이 태어났고, 나중에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포로로 잡혀간 지 약 백년 뒤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에스더서의 배경입니다.

 

노예로 끌려가 이방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고향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외로운 이민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다는 것만큼 답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총리대신이었던 하만이라는 인물이 유대인을 모조리 멸절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왕비의 자리와 생명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외로움의 땅, 페르시아에 하나님은 계셨습니까? 페르시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통과 같은 마른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메마른 땅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미국에 하나님은 계십니까? 내 삶에 하나님은 계십니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외줄을 타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곳에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추석을 보내면서 2,500년 전 페르시아에 있던 에스더를 생각합니다.


2014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