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역사는 교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세는 게르만 세계의 제2, 카를 대제(742-814)의 치세로부터 카를 5(1500-1558)까지, 9세기부터 16세기에 걸친 시대를 가리킵니다. 중세시대의 특징은 봉건제도와 교회와 국가의 대립으로 설명됩니다. 카를대제(샤를마뉴 대제) 당시에 로마교황은 롬바르드 공국의 공격으로부터 로마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카를대제는 교황의 부탁을 받고 로마를 구해줍니다. 그 후, 로마교황 레오 3세는 그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로마 황제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교황들이 황제를 임명할 권리까지 지니면서 교황의 자리는 뇌물, 음모 그리고 폭력까지도 사양치 않는 야망에 가득찬자들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의 서부 유럽 전체에서 교황들이야말로 막강한 권위를 가진 존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교권이 절정을 이를 때가 있었습니다. 11세기에 세속의 권력이 교회의 권력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카노사의 굴욕(Gang nach Canossa)>라고 부릅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려고 했습니다. 하인리히 4세는 자신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고 로마교황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카노사 성으로 갑니다. 그러나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성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금식을 하며 교황의 용서를 구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중세시대에서는 교황의 권세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권세가 부패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는 성직매매, 마녀사냥 그리고 면죄부 판매와 같은 심각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와 교황의 부패를 통해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교황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부패한 곳이었습니다.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지 못하고, 특정한 인물들만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관행과 권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패한 중세의 로마가톨릭교회를 보고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당시 루터와 칼빈과 같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이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들은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교회를 개혁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교황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교황에 열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교황에 대한 호응은 중세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교회가 부자가 되고, 대통령을 호령할 수 있는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니면 그렇게 부패했던 교황청에 진실하고 겸손한 교황이 등장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시대에 대한 경고일까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교황에게 더 많은 찬사를 보내는 것일까요? 한국을 방문한 교황의 행보를 보며 우리는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요즘 한국은 교황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 <명량> 때문입니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1597)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일본의 함대 330척에 맞서 조선의 12척의 함대를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 부재는 중세의 부패를 연상케 합니다. 이런 지도자 부재를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지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올바른 방식으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2014년 8월 17일